지금 쓰는 시간은 밤 열두시가 지났지만, 나는 아직 26일 하루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밤에 글을 쓰면 그 글의 분위기도 어두워진다고 하던데,, 날 밝을 때 쓰고 싶지만 아침은 늘 나에게 도전인지라,, 이제는 일찍 일어나는 걸 거의 포기 했다.
* “합창하는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면 순식간에 고요해지거든. 그때 적막을 들었다네. 시골의 하늘은 맑고 밤의 모판에는 별빛이 내려앉아.
논두렁 물에 하늘의 별이 비치는 거야. 별빛 뒤에 숨어서 울던 개구리들이 돌을 던지면 일제히 딱 멈추면서 귀가 멍멍할 정도의 침묵이 생겨났어.
평소에는 침묵이 안 들려. 그런데 개구리 울음소리와 소리 사이에 생기는 그 침묵. 그 침묵만큼은 들을 수가 있어.
개골개골 울다가 돌을 던지면 면도날로 자르듯 생겨난 그 침묵은 참으로 신비로웠다네.”
- 그 침묵,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사막에 불멍캠핑을 갔었는데, 바람도 안불고, 사람도 아무얘기 안하고, 앞에 장작만 불타고 있던 그 상황.
볼일보려고 언덕하나 넘어갔는데 정말 고요하더라. 밤하늘에는 달빛이 유난히 밝아서 오히려 별들이 잘 안보이던 그 하늘.
그리고 이어령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것 처럼 귀가 멍멍해지는 이상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그 조용함이 좋아서 계속해서 사막 불멍캠핑을 갔었지.
그런데 그 이후로 똑같은 경험을 다시는 하지 못했어. 알게모르게 바람도 적당히 불었고, 사람들도 계속 떠드느라 그 침묵은 다시 오지않았다.
* 마지막으로 내 아내가 ‘내 남편은 일밖에 모른다. 병원에서 수술하고도 교정 보고 글 쓰고, 아버지 제삿날에도 돌아와 일을 한다’고 하지.
그래서 내가 그랬지.
‘여보, 죽기 전까지 바느질하는 샤넬보고 주위에서 ‘좀 쉬세요’ 걱정했더니 샤넬이 뭐라고 했는 줄 알아?’
‘너희들은 이게 일로보이나? 나는 이게 노는 거고 쉬는 거야.;’
기가막힌 이야기라네. 노동은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거야. 노동에서 벗어나는 걸 쉰다고 하지.
내 일이 나한테는 노는 거였어. 나는 워커홀릭이 아니라 재미에 빠진 인간이었다니까. 허허
- 나도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기를 소망한다. 그 자체가 재미있어서 일이라고 안느껴지고 노는 거고 쉬는 거고 이렇게 되는 것.
너무 이상적인 생각만 하는 건가 싶다가도, 또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부분을 보면 내 안에 계속해서 그런 일을 찾고 싶다는 욕심이 올라온다.
어떤 일을 찾게 될지, 기대가 된다. 열심히 책읽고 글쓰다보면 찾을 수 있게 되겠지.
* 황금은 황금의 길, 피는 피의 길, 언어는 언어의 길. 제 각자의 길을 열어줘야 하네.
언어 교환도 돈이 명령하면 서글퍼져. 나는 이렇게 쓰고 싶은데 출판사는 저렇게 쓰라고 하면 작가는 의욕을 잃어버리거든…
“피, 돈, 언어가 각자 제 갈 길을 가야 하는데, 현대사회는 돈이 가장 큰 힘으로 모든 길을 빨아들이니 큰일입니다.”
“돈의 비극이 딴 게 아니야. 돈의 교환가치가 언어의 교환가치, 피의 교환가치를 침입할 때 이 3대 평행선이 부딪혀 충돌할 때 비극이 생기는 거야…”
- 내 삶에 적잖이 영향을 주는게 물질적인 부분이다. 쉽게 말해 돈.
지금보다 돈이 좀더 많으면 더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텐데.
누군가 그러던데 지금 당신이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당신의 월급이 얼마인지 보라고.
평균적으로 월 1000만원까지 벌 수 있는 능력이 되면 행복지수가 상당히 높아진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그 단계를 못가봤으니,
지금 내가 스스로 느끼는 행복감과 어떤 차이가 있을 지 잘 모르겠다.
그 차이를 알고 싶은 목적으로라도 월 1000만원 한 번 벌어보고 싶네.
* 사랑이라는 단어와 용서라는 단어.
“사랑은 쉽지만 용서는 어렵습니다. 사랑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베풀 수 있지만, 용서는 다릅니다. 죄지은 자들끼리 그 분량을 놓고 다투는 일이니,
용서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을 용서하려면 커야 되고 높아야 되고 힘이 있어야 하지. 용서하는 사람이 진정한 강자라네. 가장 큰 용서의 존재가 누구겠나? 신이야.
하나님이지. 주기도문에도 나오잖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그게 기독교야.
기독교는 하나님이 끝없이 인간을 용서하는 종교일세. 하나님만이 인간을 용서할 수 있어.
… 누가 인간을 용서할 수 있나. 다 용서받을 사람인데.”
… “나는 용서라는 말을 잘 쓰지 않아. 나는 용서받을 사람이지 용서해줄 사람이 아니야… 나는 말이네, 용서받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인간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죄짓는 일이라네…”
- 와… 이 부분을 보면서 감탄하게 된다.
나는 용서받을 사람이지 용서해줄 사람이 아니야… 라는 표현.
이 말을 내 삶에 적용하게 되면, 아마 나는 평생 겸손하게 살 수 있게 될 것 같다.
용서받을 게 많은 죄인인데,, 어떻게 교만할 수 있을까..?
그런데 나도 어지간히 못된 인간인지라,, 배은망덕한 일을 했던 것들이 많이 기억난다..
겉으로는 좋은 사람인 척 하는 거지, 그 속내는 추하고 역겨운 것들로 가득한 인간인 것을 솔직하게 얘기한다.
그렇게 보니 내가 여태 해온 것들이 참,,, 가식적으로 느껴지네.
저와 만나며 상처를 입으신 모든 분들에게 죄송합니다.
지나가며 만나게 된다면, 꼭 사과 드리겠습니다.
이제라도 늘 마음속에 나는 용서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겸손하자.
* “‘누이좋고 매부 좋고’ 라는 말이 있지? 뽕도 따고 님도 보고. 이거 제일 잘하는 사람들이 한국인이야. ‘이거냐? 저거냐?’가 아니라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거지’. 외국인들은 디지털이면 디지털, 아날로그면 아날로그, 경계가 뚜렷해. 그런 이원론으로 과학과 합리주의를 만들고
메뉴얼과 원칙을 만들어 세계를 리드했지. 하지만 한국인은 정량적인 것과 정성적인 것. 원칙과 직관을 융합해버려.
… 한국 사람이 위기에 강하다고 하는데, 위기에 강한 게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강한 거라네.”
… 이것과 저것의 대립이 아니라 이것이면서 동시에 저것인 상태. 함께 있되 거리를 두고, 경쟁하면서 협력하는 그 ‘경계의 힘’
- 이거,, 나도 잘하는 건데.
나는 너무 무분별하게 이것 저것 다 취하는 건가.
지금 하고 싶은데 사실 너무 많다. 책도 써보고 싶고, 어플리케이션도 만들어보고 싶고, 여행사도 하고 싶고, 케이팝 관련 일도 하고 싶고,
요 최근에는 또 명함을 디자인 하면서 디자인 쪽도 하고 싶고,,
다 배워서 이 것들을 잘 혼합하면 재밌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너무 광범위한 것도 사실이다.
일단 차근 차근 하나씩 섭렵해 나가자.
*리더는 사잇꾼, 너와 나의 목을 잇는 사람들.
“… 어느 조직이든 이쪽과 저쪽의 사이를 좋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조직은 망하지 않아. 개발부와 영업부, 두 부서를 오가며 서로의 요구와
불만을 살살 풀어주며 다리 놓는 사람. 그 사람이 인재고 리더야. 리더라면 그런 ‘사잇꾼’이 되어야 하네…”
- 이 표현을 보면서 성경 구절이 생각난다.
마태복음에 여덟가지 복에 대해서 나오는데 그중에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라는 말씀이 있다.
점점 사회는 각박해지고, 민족과 민족이 대립하고, 남성과 여성이 대립하고, 사측과 노조가 대립하고 모든게 다 대립으로 가는 안타까운 현상을 보게 된다.
사실 지금이나 먼 옛날이나 대립은 계속 있었다. 이집트 벽화에 보면 그런 글이 있다고 한다.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다”
끊임없이 대립해왔던 이 세상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화평을 얘기 하셨고 사랑을 얘기하셨다. 그리고 그 사랑을 직접 십자가를 통해 보여 주셨다.
물론 사는게 고통이라고 한다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그 주변을 화평하게 만들고 있다. 먼저는 가정안에서, 직장과 같이 속해 있는 공동체 안에서.
반면, 교회이지만 화평은 온데간데 없고 목사님과 장로들과의 대립, 성도님들 사이에 대립 등 참 안타까운 일들이 많다.
어차피 살아가는 인생인데,, 그 살아가는 인생을 대립과 화, 불만으로 채울 것인가? 화평과 사랑, 감사로 채울 것인가?
답은 분명하지 않은가? 내 삶을 그런 부정적인 것들로 채우기에는 너무 아깝다.
사랑하며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들인데,,
그런데 또 이렇게 마음먹어도 당장 내일 출근해서 일하다 보면 내 마음과 감정, 그 무엇 하나 통제할 수 없는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잠 들기 전에 각오라도 하고 잘 수는 있겠지..
내일 하루도 화평과 사랑, 감사로 채우는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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